천국과 지옥 – 끊임없이 변화하고 또 변화해야 한다 - 리처드 로어 신부-

 

대부분의 종교에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 천국과 지옥은 기본적으로 장차 받을 보상과 형벌의 장소로 그려진다. 그리하여 우리가 바로 지금 여리 우리 안에, 우리 주변에 있는 천국과 지옥을 보지 못하게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천국과 지옥을 가리켜 우선 “의식의 상태”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시몬 베유가 천국과 지옥을 가장 훌륭하게 설명한 것 같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내면의 친교 inner communion는, 선한 사람에게는 선한 것이고 악한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다. 하느님은 온갖 못된 놈들을 낙원으로 초대하신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거기가 지옥이다.” 끊임없이 변화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천국은 지금 그리고 영원히 있다. 이른바 ‘나쁜 놈들’ 에게도 하느님은 사랑의 친교 안으로 들어오라고 끊임없이 손짓하신다. 스스로 변하여 그 친교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천국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 자신이 바뀌는 수련을 잘 하는 게 좋겠다.!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는 “천국으로 가는 모든 길이 천국이요. 지옥으로 가는 모든 길이 지옥이다.”라고 말했다. 친교 안으로 들어갔으나 변하지 않을 때 경고로서 지옥 개념은 필요하다. 변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영혼을 죽이는 독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신앙 실천이 삶과 사랑의 끊임없는 도전에 자신을 열어 놓는 것이라면, 당신은 하느님을 보게 될 것이고 당신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때로는 지옥 같은 상황일지라도 가슴 공간과 머리 공간을 항상 열어놓는 것, 그것이 영적 일의 바탕이다.

 

뉴먼 추기경은 이렇게 말했다. “바뀌는 것이 사람 되는 것이다.” 많이 바뀌는 것이 완전해지는 것이다. 위인들은 삶이 제공하는 것, 삶이 명하는 것에 항상 순응하면서 살아간다. 짐승들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으로 지능을 측정한다. 우리라고 해서 달라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혹시 변화가 질서감각을 잃게 하고 하느님을 믿는 신앙에 어긋나는 것을 포함하여 무슨 잘못을 범하게 하진 않을까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굳어진 흑백논리가 그보다 훨씬 더 고약하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분에게는 입술로 바치는 충성이 필요 없다. 하느님 사랑은 아주 정교하고 거침없어서 나를 바른 방향으로 돌아서게 하기 위하여 세상을 기꺼이 둘러엎으실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어떻게 거룩한 은총이 죄로 물든 나의 인생을 감싸고 오히려 그로써 선을 만들어

내는지, 어떻게 전 우주가 고체에서 액체로, 기체로, 마침내 허공으로 끊임없이 바뀌는지를 볼때마다 내 눈에는 하느님이 온전한 변화 그 자체이신 것처럼 보인다. 변화가 하느님의 명백한 패턴이다. 물론 우리는 하느님보다 크지 않다. 확실성, 예측 가능성, 그리고 완변한 질서가 그토록 중요하면 예수가 디지털 카메라와 녹음기 시대에 와서 직접 자신의 생각을 어딘가에 지워지지 않게 남겨놓았을 것이다! 음식과 술이 풍성한 잔치판을 여는 대신 문서보관소 설립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을 것이다. 그분은 말했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요한10,10

 

어떻게 우리는 옳고 합리적인 관념들을 풍요로운 삶과 혼동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스스로 자기 자신과 세계와 하느님을 그려놓고 그 형상을 움켜잡은 채 놓아버리지 않으려는 사람들한테서 그런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관계에 집착하여 그것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묵은 술이 더 좋다’루카5,39고 하면서 신비와 예언자들은 그리고 예수가 마련한 큰 잔치 이사 25,6-7;55,1-2;요한2,1-12;루카14장 에 발을 들이려 하지 않는다.

 

 

- 발거벗은 지금 – 중에서 (바오로딸 출판사)